연말 인사평가 시즌이 돌아와서 지난 1년간 했던 활동들을 정리하며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냈고 내년에는 어떤 점을 개선하고 유지할 지에 대해 공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2025년은 내가 직장을 온전하게 1월부터 지금까지 풀타임으로 다닌 첫 번째 해이기 때문에 개인의 인생사에 한 번 밖에 없을 시절이고, 이 시기동안 적지 않게 많은 것들을 경험한 것 같아 감사한 해였다. 대주제 몇 개를 선정해서 얘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주제 1. 개발자도 사회 생활을 잘해야 한다.
이제 일한지 대략 1년 하고도 4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인데, 벌써 여러 사람들과 협업을 진행했다. 사람마다 성격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 다르기 때문에 역시 회사에서 일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체감했다. 고등학생 때는 (Problem solving, competitive programming 하는 커뮤니티에 속해 있어서 유독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개발자가 실력만 좋으면 되지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물론 그건 아니라는 게 대학생이 되면서 깨졌다. 현업에서 일하면서 몸소 그걸 느끼게 되니 역시 '인생은 실전이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해봐야 아는 영역이 있다.
개발자로서 전문 지식이 있어야 하는 건 사실 기본 소양에 가깝다. 그것이 자신의 몸값이니 말이다. 하지만 일을 혼자하는 환경이 아니라 여럿이서 해야 한다면 서로의 수준 차이도 있고, 성향 차이도 있기 때문에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과정을 상대방에 잘 설득시키거나 상대방의 의견을 잘 경청해서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역량도 전문 지식만큼 중요하다. 때로는 상대방이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하더라도 당장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끼는 중이다.
물론 업무에 따라 이런 소프트 스킬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업무는 문제 해결을 하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과 합의를 봐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기 때문에 개발자라고 한들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 의사소통이 원활한 사람이 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견 합의를 볼 때 어떤 주장이 있으면 그 주장을 잘게 쪼개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기준(근거가 있는지, 현재 상황에 적절한 지)에 부합하냐, 부합하지 않냐로 판단하는 과정을 세우면 서로 감정 상하는 일도 줄어들고 나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아 요즘 이런 방향으로 대화를 나눠보려고 한다.
부가적인 것 같긴 하지만, 어쨌거나 인간 대 인간이기 때문에 때론 개인사에 대한 얘기를 꺼낼 때도 있는데 전에 들었던 내용을 나중 대화에서 언급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과하면 좀 무섭긴 하지만, 어느 정도 선에서 잘 하면 '아 이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있구나', '센스 있네'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회사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친해지는 걸 지향하지는 않지만 같이 있는 동안에는 스몰토크를 안 할 수는 없으니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주면 손해 볼 게 없는 장사이다.
주제 2. 회사에 의존적인 삶을 살면 안 된다.
인생 전반에 적용되는 말 같지만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으면 안 된다'라는 격언은 회사 생활에도 적용되는 거 같다. 인생을 살면서 여러 옵션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얼마나 부러운 삶인지는 인생을 살다 보면 한 번씩은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지원한 대학 중에 모든 곳에서 합격을 받았다면 룰루랄라 하면서 고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회사도 언젠가는 내가 이 곳을 떠날 것처럼 다녀야 오히려 더 열심히 살 수 있기에 내 커리어적으로도 좋고 회사에서도 좋을 수 있다. 개발자라면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기회 창출을 노릴 수도 있겠고, 아니면 다른 경험을 통해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을 우연찮게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회사에 모든 걸 바치는 게 그렇게 좋은 건 아닌 거 같다. 왜냐하면 인생을 너무나도 짧고, 우리의 관심사는 무한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 자신이 직접 사업을 하거나, 회사에서 일하면서 본인의 로망을 실현할 수도 있고, 어찌되었든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서 회사와 나와의 관계는 내가 어떤 용역을 해주는 대가로 고용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용역의 가치가 사라지게 되면 회사를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물론 고용노동법 같은 제도적 장치가 있어서 막무가내로 해고가 쉬운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나의 서비스 제공으로 인한 돈을 지급받는 것이기에 항상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가벼우면서도 뒤에서는 철저히 준비해야 (오리의 다리가 수면 아래에서는 열심히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대비가 가능할 것이다.
주제 3. 기록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년 11월부터 1년간 꾸준히 하루동안 회사에서 했던 것들이나 메모해야 할 것들을 노션에 정리하고 있다. 별건 없고 그냥 뭐 했는 지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이걸 한 계기는 전에 산기요로 계셨던 포스택 출신의 동료분이 계셨는데 매일 노션에 정리를 거의 논문급으로 하루 종일 하는 걸 보면서 아 나도 저렇게 정리를 하면 좋겠다 싶어서 시작했다. 대신 나는 논문급은 아니고 대충 불렛포인트로 정리만 했다. 그래도 이걸 함으로써 작년 인사평가 준비도 편했고 올해 상반기 정산할 때도 편했고 이번 인사 평가 준비도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Jira를 사용하긴 하지만 내가 뭘 했는지는 역추적하기 상당히 까다로운데, 이렇게 내가 해놓은 것들을 다 정리해두면 나중에 찾아볼 때 한결 수월해진다. 기록이라는 게 쓸 때는 귀찮지만 다시 되돌아볼 땐 이것만 한 게 없다. 최소한 텍스트라도 적어놓으면 기억을 회상하는데 도움이 된다. 요즘 더 느끼는 거지만 우리의 기억력은 정말 좋지 않다. 그래서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여러모로 중요한 거 같다.

그냥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도, 데이트하는 것도 기록을 안 해놓으면 다 날라가고 회상하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글, 사진, 영상으로 담아두면 그 시절의 추억 회상이 가능하다. 가만 보면 옛날 조선시대 때는 기록하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지 않나? 사진이나 영상은 당연하고, 글 쓰는 것도 배운 사람이나 가능한 것이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기록매체가 지금 다 디지털로 넘어가는데 한 100년 뒤에는 어떤 기록 매체를 쓰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이 든거지만 전쟁 났을 때 데이터 센터를 지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 이번에 정부청사 사이트 화재 때문에 복원도 어렵다고 들었는데, 그런 우리의 중요한 역사를 디지털로 다 옮겨놨는데 백업이 안 되어 있으면 태초마을부터 시작인 것이다. 결론은 기록을 잘하고, 기록물을 잘 보존하자. 이렇게 요약하니 조선시대 사람과 다를 게 없는 21세기 사람이다.
회사 이야기 1
한 6월쯤부터 사실상 내가 백엔드 팀의 팀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인원수가 워낙 적기에 매니징의 부담이 크진 않지만 또 없는 건 아니기에 나름대로 고민이 많다. 그래서 주제 1을 사회 생활로 정한 것이다. 여러 사람들을 거쳐보내며 나는 계속 남아있는데, 개발하고 있는 제품만 본다면 좀 더 장기투자의 마음으로 회사를 다녀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내가 이 회사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 지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라는 것도 깨달았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제품 만드는 것에 있어서 동기부여가 되어야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난 1년 4개월 동안 언제는 다운되기도 하고 업되기도 했는데, 보통 다운이 되어 있을 땐 할 일이 없거나 탁상공론으로 시간이 허비될 때였고 업이 되어 있을 땐 할 게 있고 그 일을 내가 너무나 빨리 끝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때였다. 본질은 나를 잃지 않고 자기 개발을 꾸준히 하면서 회사와 내가 같이 성장하는 게 베스트 아닐까. 작은 회사라고 해서, 큰 회사라고 해서 못 클게 아니라 내가 거기서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기에 결국 미래의 나를 결정하는 건 나의 행동으로 이뤄진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여담 1
1년이라는 시간이 솔직히 어떻게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간 거 같다. 회사생활을 하다보니 사실 퇴근하고 나면 내 삶이 있기 어렵다. 출퇴근 시간이 아깝긴 해서 월세집을 구해야 하나 싶은데, 일단은 살만한 거 같아서, 그리고 집이 좋아서 (난 이미 4년을 해외 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족들이랑 있는 게 가치가 매우 크다는 걸 느낀다) 안 구하고 있다.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워낙 일주일이 후딱 지나가다 보니 그냥저냥 한 살 더 먹는 게 싫어서 사이드로 뭘 파볼까 이리저리 보고 있다. 하지만 잠정 결론은 집중해서 몇 가지만 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거다.
존경하는 워렌버핏이 말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 25가지를 고르고 그중에서 5개만 골라서 실천하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요즘 그 말에 공감이 많이 가는 것이, 나는 관심사가 되게 많다. 근데 그걸 꾸준히는 못한다. :(
예를 들자면, 공부에서는 수학, 과학(전기 전자), 물리학, 화학, 컴퓨터 과학 등이 있고 스케이팅, F1, 헬스, 큐브, 청소, 납땜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이걸 다 할 수가 없겠다는 결론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이기에 좀 시즌별로 3-4년 동안 집중해서 파고들 주제들을 선정하고 그것만 좀 해야겠다. 근데 워낙 내가 ADHD인가 싶을 정도로 휙휙 관심 주제가 바뀌기에 위의 조언이 나에게는 적절하지 않은가에 대한 의심도 하고 있다. 일단 그래도 뭐라도 집중해서 하는 것이 내 커리어에도 좋을 듯하니 꾸준함을 핵심으로 해서 나의 취미 생활도 꾸려볼 생각이다.
이 글을 정리하며
유학 생활하면서 나 나름대로 정해놓은 것이 있다. 장기 투자하듯이 인생을 사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꾸준하게 기반을 다지자. 그리고 전에 팔이 부러지면서 크게 수술한 이후에 추가한 것이, '언제나 내가 불구가 되거나 죽을 수 있으니 현재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나 또한 현재의 상황에 감사하며 살자'이다. 이런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게 정말 어렵지만 가까워지도록 노력해야 함을 이번 글을 통해 다시 마음에 새긴다. 또한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는 걸 성인이 된 후로 많이 느낀다. 내가 그렇게 성격이 좋지 못한 인간인데, 대학 시절이나 요즘에 나를 아주 이상한 놈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잘 다루는 지인, 친구,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말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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