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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영국에서 팔씨름 하다가 팔 부러진 썰

by plzfday 2024. 3. 6.

친구랑 팔씨름하다가 오른쪽 전완골이 부러졌습니다. 친구가 뜬금없이 팔씨름을 하자고 했는데 없섭 채널에서 홍지승 선수 나온 거 보고 오랜만에 팔씨름이나 해보자는 생각에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서로 힘이 비슷해서 팽팽했고 제가 끝내려고 몸을 기울이다가 팡! 하는 소리가 나더니 팔이 부러졌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끔찍하네요.

저는 침착하게 바로 패닉상태가 온 친구한테 침착하라고, 빨리 999에 전화하라고 했고 전화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전설의 영국 의료시스템답게 이 정도 응급상황 가지고는 응급차를 보내주지 않았고 999와 111이 서로 전화를 해보라는 개판을 경험하며 2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사실 후디를 입고 있어서 팔이 부러진건지 팔이 빠진 건지 알 수 없고 어떻게 응급처치를 해야할 지 모르겠는 상황 속에서 결국에는 우버를 불러서 UCLH A&E를 갔습니다. 사실상 응급차를 기다릴지 우버를 불러서 직접 갈 지 제가 결정해야 하는 거라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통증이 어마어마했고 숨도 정상적으로 쉬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어찌저찌 해서 응급실에 도착했고 X-ray 찍었더니 right humerus가 부러졌다고 바로 나왔고 한국말 하실 줄 아시는 여자 선생님이 거의 수술해야 할 거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x-ray 찍을 때도 당시에 근육도 같이 돌아가 있는 상태라 x-ray를 제대로 찍기 위해서 팔을 살짝 움직일 때마다 아파서 죽는 줄 알았는데 한국말하실 줄 아시는 그 여자 선생님께서 "사내 자슥이~" 그러셔서 웃펐습니다 ㅋㅋ.

새벽 4시까지 정형외과 선생님을 기다렸고 다행히, 정말 운이 좋게도 가능하신 선생님이 계셔서 다음날 수술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셔서 피뽑고 집에 갔습니다. 잠깐 눈을 붙이고 9시에 병원에 다시 가서 오후 2시정도까지 기다렸다가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수술복은 처음 입어봤는데 팬티도 벗고 압박 스타킹도 입는 굉장히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지만 이마저도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태어나서 수술은 처음 해봤는데 오른팔 전체에 마취를 넣느라 팬타닐을 바로 넣어주시더라고요. 수술 전, 중, 후 마약성 진통제를 정말 많이 맞아봤는데 되게 신기한 경험이었고 다시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ㅎㅎ... 전신 마취가 대단하긴 하더라고요. 오른팔 마취 후에 전신 마취를 위해서 마스크 딱 씌워주시고 한 5초도 안 되어서 마취가 된 것 같은데 기억이 하나도 없습니다. 수술이 범위가 의사 선생님들께서 생각하신 것보다 커서 꽤 오래걸렸다고 하셨는데 전신 마취라는 게 없었다면 절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의학의 발전에 감사합니다.

입원은 하루만 했는데 사실 수술 직후에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팬타닐을 더 맞고 마약성 진통제도 받았었습니다. 간호사님께서는 제가 하룻동안 너무 힘들어 하시는 걸 보셔서 하루 더 있는 걸 의사선생님께 제안드려보겠다고 했는데 한 4번 퇴원하세요, 하지마세요 했다가 결국엔 하루 지나고 퇴원했습니다. 솔이형이 유일하게 병문안을 와주셨는데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수술 내용은 팔꿈치부터 거의 전완골 1/3을 제외한 부분에 티타늄 판을 대고 핀을 박았는데 수술 후 팔꿈치 통증이 너무 너무 심했어서 퇴원 후 일주일동안은 계속 침대에 누워서 골골댔습니다. 일주일이상 지난 지금은 계속되는 통증은 없고 가끔씩 이상한 자세에서 통증이 오긴 합니다.

이런 사고를 겪고 나서 느낀 점에 대해 얘기를 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첫째, 신경이 망가지지 않은 것에 감사합니다. 팔이 부러지자 마자 손가락이 움직이는지 체크했었습니다. 사실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장애인으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상상조차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한 팔만 못 써도 사는게 너무 불편하다. 샤워하는 거, 설거지, 요리, 지퍼 잠그기 등 정말 많은 것들이 불편해지고 시간이 배로 듭니다. 우리가 살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감사함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셋째, 의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나라에서 살자. 제가 물론 응급차를 부르려고 그 난리를 쳤을 때는 사실 영국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냥 그 상태로 쓰러지라는 건지 뭔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만약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했을 때 영국은 선녀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영국은 NHS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은 병원에서 일어난 모든 것들에 대해 무료입니다. 물론 의료보험에 제가 낸 돈만해도 백만원 단위이긴 합니다. 꽤나 큰 수술이었고 입원도 했기 때문에 금전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친구 사이에 돈 얘기가 나오면 어쨌든 저쨌든 불편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나마 영국에서 이 일이 일어나서 다행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론은 의료 체계가 잘 되어 있는 곳에 사는 곳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에 건강만큼 중요한 것 없다라는 고리타분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정말로 맞습니다. 인생에 건강만큼 중요한 것 없다는 걸 이번 기회를 통해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 인생이 아무리 힘들고 그래도 포기하지 마시고 건강을 해치는 행동은 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는게 우리입니다. 항상 건강을 생각하시고 당장의 이벤트에 너무 목숨걸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랬는데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세상 살면서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게 당연한 것 같습니다. 저도 영국살이 4년동안 지금까지 겪어본 적도 없던 일을 많이 겪었는데요. 그때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는 방식으로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자 할 것이고요. 이 글을 읽으시면서 본인이 건강하시다면 현재의 건강함에 감사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ㅎㅎ 좋은 하루 보내세요!

p.s. 팔씨름으로 팔이 부러졌다고 하니까 만나는 모든 의사분들께서 하신 말씀이 "사람들이 팔씨름이 위험한지 잘 모르는데 생각보다 되게 위험한 운동이다", "너가 처음이 아니다. UCL 전통이냐?"라고 하셨습니다 ㅋㅋㅋ. 여러분 팔씨름 되도록이면 하지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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